"오방색에 깃든 '치유의 기운' 제주인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한겨레, 김경애 기자


"청·적·황·백·흑, 오방색은 흔히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을 상징하는 '정한의 원형'이라고들 하죠. 그래서인지 20년 전 뉴욕으로 유학을 가서보니 제 내면에 깃든 오방색이 선명하게 드러나 지금껏 저만의 화풍으로 삼게 됐어요. 그런데 2016년 '설문대할망 신화'를 주제로 처음 제주도 전시를 하면서 신비한 교감을 경험했어요. 바로 오방색에서 품어져 나오는 치유의 기운이었죠. 제주 사람들에게도 그 기운이 전해진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오방색을 주제로 한 추상표현주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김두례(62) 화가가 최근 제주도에서 두번째 개인전을 하게 된 이유다. 그는 오는 31일까지 제주시 조천읍 조이빌 삶의예술문화원에서 새로 문을 연 갤러리에서 오방색 판타지 전시를 하고 있다.


삶의예술문화원 갤러리 개관 기념전


'오방색 판타지' 아트상품 재능기부도 부친 '호남의 좌장' 94살 김영태 화가 모친도 대학때 천경자 화가의 애제자 딸 다섯 모두 미술 전공 교직 활동 "어머니의 조각보에서 오방색 영감"


"부모님 모두 '1세대 화가'인 덕분에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가 일상이었어요. 딸 다섯이 모두 미대를 나왔을 정도니까요. 지금은 대부분 은퇴했지만 한국화, 디자인, 섬유예술 등을 전공하고 모두 교직 생활을 했어요. 전업작가로는 둘째딸인 저만 남았네요." 그의 부친은 광주 '조선대 미대 1호' 졸업생이자 '호남 화단의 좌장'으로 불리는 김영태 화가이고, 모친 김영순(2019년 작고)씨 역시 전쟁통에 숙명여대를 그만둔 뒤 광주사범을 다니면서 조선대 교수였던 천경자 화가에게 그림의 배워 애제자로 꼽혔다. 미국 이주하기 전까지 천 작가는 그(김두례)의 전시회도 보러올 정도로 두 집안이 가까이 지냈는데, 모친의 재능 단절을 몹시 안타까워했단다. "아버지의 조대부중 미술교사 수입으로 6남매를 키우고, 더구나 줄줄이 미대 공부를 시켜야 했으니 어머니의 헌신이 절대적이었죠. 결혼하기 전 가정과 미술 교사를 했던 경험을 살려 내내 부업으로 자투리 천을 모아 조각보 이불을 만들어 파셨는데 딸들도 밤새워 실밥을 정리하며 도와야 했어요. 그런데 그 엄마의 조각보가 모두 오방색 아니겠어요?"



Untitled 15, 2015



1975년 조선대 서양화과에 입학한 김 작가는 '부친의 후광'을 피하고자 의도적으로 다른 화풍을 추구해 초기 5회까지 누드화로만 개인전을 열기도 했단다. 그러다 1990년대말 외환위기 여파로 가정 생활이 흔들리는 위기를 겪은 뒤 2000년 뒤늦게 미국 유학을 감행했다. 김환기보다 10년 앞서 1957년 뉴욕에 정착해 '한국적 추상 표현주의'를 개척한 원로화가 김보현(미국이름 포 킴, 1917~2014)의 문하생으로 새 출발을 한 것이다. 1946년 조선대 예술학과를 창설한 첫 전임교수였던 김보현 화백이 40여년 만인 1990년대 후반 귀국해 첫 제자인 그의 부친과 재회한 덕분이기도 했다. "미대 졸업한 뒤 미술 교사로 일하다 결혼하고 아들 둘 육아에 몰두하면서 비교적 평탄하게 살아왔던 까닭에 중년의 홀로서기로 몸도 마음도 몹시 어둡고 힘들었지요. 그러다 뉴욕에 가서 오방색으로 캔버스 가득 단순하면서도 역동적인 붓질을 하면서 우울한 기운이 걷히고 기쁨과 환희 같은 신명의 기운이 솟아 오르는 '치유의 체험'을 했어요. 그림은 스스로를 속일 수 없는 일기 같은 작업'이란 사실을 절감한 순간이기도 했죠."


그렇게 은사를 잇는 '추상 표현주의' 작가로 변신한 그는 2003년 귀국 이후 거의 해마다 개인전을 열고 있다. 2005~06년에는 일본 도토리현 요나고에서 김영태-김두례 부녀 초청전을 열기도 했다. "아버지는 올해 94살 현역으로 여전히 '구상회화의 마지막 보루' 자리를 지키고 계시지만 색감은 은연중에 닮아가고 있으니 더 늦기 전에 국내에서도 '부녀전'을 열어보고 싶어요."




Untitled 2, 2015